시사/두루 두루

인터뷰 유시민 / 한국일보 2011년3월25일

노하우업 2011. 3. 25. 06:09

참여당은 진보·자유 모두 아울러 / 진보후보 1명만 나와야 대선 승리 / 박근혜 대세론은 여론조사의 함정
鄭 전 총리 초과이익공유제 주장은 대기업의 中企 압박 심각해서 비상책 세워야 한다는 경고로 생각



누구는 그를 능력 있고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치켜세운다. 또 누구는 그를 예의 없고 독선적이라고 비판한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에게는 상반된 평가가 따라 붙는다. 

그런 그가 19일 국민참여당 대표가 된 뒤 정가에 긴장이 흐르고 있다. 의석 하나 없는 미니 정당의 대표에게 과도한 시선이 쏟아지는 것은, 그가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눈 앞에 닥친 4∙27재보선을 시작으로 내년 총선과 대선 등 긴박한 정치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력을 검증 받아야 한다. 야권의 연대와 통합도 그에게 던져진 숙제다. 

H-직격인터뷰는 21일 밤 서울 마포구 창전동 국민참여당 당사와 부근 카페에서 그와 장시간 대화하며 정치인 유시민과, 한 가족의 구성원 혹은 생활인으로서의 유시민을 함께 발견했다. 그는 필요한 곳에 필요한 단어를 사용하며 논리적이고 정확한 언어로 자신의 뜻을 전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론과 변증법의 아우프헤벤(aufheben∙지양) 그리고 리스트, 리카도, 슘페터, 장하준, 로크 등 경제학자와 철학자까지 등장하면서 인터뷰가 한때 정치, 경제, 역사 등에 대한 공부로 변하기도 했다


_국민참여당의 대표가 됨으로써 정치 인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어렸을 때 꿈이 정치인이었나.

 

"특별한 꿈이 없었던 것 같다."

 

_꿈이 없었다니 뜻밖이다.

 

"멘토가 없었기 때문 아닐까. 고교 때 공부 잘했기 때문에 주위에서 사법시험 보라고 했고 그래서 법학과가 속해있던 서울대 사회계열로 진학했다. 아버지는 아버지 대로 영문과에 진학했으면 했다. 영어 배워 유럽이나 미국에서 서양철학 공부하고 철학자가 되길 원했다. 그렇게 해서 대학에 입학은 했지만 사시 공부 할 여건이 아니었다. 유신체제 속에서 판검사 되면 죄 없는 사람을 감옥에 보내야 할 것 같았다. 원래 꿈이 없었던 데다, 유신체제였기 때문에 개인 목표를 세울 상황도 아니었다."

 

_아버지가 멘토에 가깝지 않았나.

 

"평생 학교 선생님만 하신 아버지는 다분히 이상주의자였다. 나 역시 공부 잘하면 유학갈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등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아버지의 말씀 따라 철학 할 생각은 없었다."

 

_대학 때 비판적인 사고를 갖게 된 계기는 뭔가.

 

"앞에 앉아 있는 저 선배(이백만 국민참여당 대변인이 서울대 경제학과 75학번으로 3년 선배) 같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선배, 친구들과 노동, 농업, 양성평등, 정치, 경제, 남북관계, 베트남전 등을 공부하는 게 너무 좋았다. 그러다 보니까 데모해야겠다, 하지 않으면 비겁하다, 그런 생각을 했다."

 

_어느 학회에 들어갔나.

 

"농법(농촌법학회)이었다." (이백만 대변인은 "아시아경제 이세정 편집국장(서울대 법대 79학번)도 농법 출신이다"고 부연했다.)

 

_당시 지적 충격을 받은 책, 뭐가 있나.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리영희 선생님의 책이 있다. 그 책에서 지식인의 삶을 배웠다. 나치에 저항한 젊은이들을 그린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같은 책도 읽었다. 고교 때 읽은 <죄와 벌> <좁은 문> 등도 충격을 주었다."

 

_정치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가.

 

"1987 6∙29 선언이 나오자 '6∙29는 속이구'라는 유인물을 만들어 트럭에 싣고 옮기다가 붙잡혔다. 경찰이 배후를 알아보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대어를 잡는 미끼로 쓰려고 그랬는지 나를 풀어주었다. 그래서 서울 은평구 신사동 연립주택 지하방을 얻어 7개월 동안 숨어 지냈다. 그곳에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누나(유시춘)가 보자고 해서 나갔더니 막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해찬 전 총리가 나와 있었다. 민청련, 민통련 등에서 같이 일한 적이 있으니 잘 아는 선배였다. 내게 수배 풀어줄 테니 자기 보좌관 하라고 했다. 수배 풀어준다니 괜찮겠다 싶어 그렇게 했다. 그 뒤 지방의회가 생기고 내가 서울시의원 관악구 후보로 평민당 공천을 받았으나 당이 돈 공천 파문에 휩싸이고 이 의원이 탈당해 따라서 정치판을 떠났다. 그게 91년이다. 그 해 이 의원이 재선에 도전할 때 자원봉사자로 도운 뒤 독일로 유학 갔다."

 

_정치판을 떠난 이유가 무엇인가.

 

"직업으로 할 일이 아니었다. 11일 눈을 뜨면 12 31일까지 한해 일정이 다 보였다. 그만큼 일이 뻔했다. 거기에다 김영삼 총재는 3당 합당하지, 국회는 날마다 날치기 하지. 그러니 재미가 없었다. 그래도 월급은 많이 주더라. 88년 스물 아홉 나이에 4급 공무원인 보좌관이 됐으니 대우가 제법 좋았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도 잘 나가 경제적으로는 괜찮았다."

 

_결혼은 언제?

 

"보좌관 되고 수배 풀리자 바로 했다."

 

_독일 가서 석사를 했는데 왜 박사는 하지 않았나. 부인은 박사학위를 땄는데.

 

"97 4월 석사 마치고 박사 과정 들어가기 위해 지도교수 정하고 테마 잡고 자료 모아 읽기 시작하는데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터졌다. 한국에서 오는 돈이 반토막 나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둘 중 하나는 공부를 포기해야 했는데 내 처가 더 공부하고 싶어했다."

 

_부인 한경혜씨가 "나는 음악과 공연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낚시와 축구, 당구를 좋아한다"고 하더라. 당구는 언제 시작했나.

 

"40대 중반에 처음 했다. 지금도 당원들과 가끔 치는데 150이다. 고스톱, 포커도 좋아한다."

 

_골프는.

 

"한번도 안 했다. 남들이 골프 하는 것을 보면서 위험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처럼 돈 없이 정치하고, 권력기관이나 기득권자의 눈 밖에 난 사람이 할 운동은 아니었다."

 

_선배인 이해찬 전 총리는 엄청 좋아하는데.

 

"이 전 총리도 나와 함께 일할 때는 안 했으며 3선이 된 뒤에야 골프를 했다."

 

_부인이 "남편은 설거지도 하고 다정다감하다. 여성적 감수성도 많다"고 했다.

 

"원래 요리를 내 처보다 잘한다. 독일 유학 중에는 자장면, 짬뽕, 전주식 콩나물국밥, 족발 비슷한 독일 요리,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지금은 정치하느라 못한다. 양념통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_이렇게 다정다감하고 감수성 있는 분이 정치판에서는 왜 그리 강하게 투영되는가.

 

"정치판에서는 서로 의견이 다르면 말을 조심한다. '다 옳은 말씀인데 존경하는 아무개 의원님, 저는 이 것 한가지는 생각이 다른데요' 하는 식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 하면 정치 그만두려 했기 때문에 상냥하게, 에둘러서 말하지 못했다. 옳은 말인가, 필요한 말인가만 주로 생각했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투로 말했다. 당내 기반 구축하고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 쌓으려고 진지하게 노력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정치인으로서 책임감과 진지함, 그런 것이 없었던 것 같다."

 

_그런 태도에 지적 우월성 같은 건 없었나.

 

"없었다. 변명 같지만 덧붙이자면, 비공개 의총 등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방과 비난이 너무 많았고 내가 그걸 참지 못한 면도 있다."

 

_돈 문제도 궁금하다. 정치인이 되기 전에는 어떻게 돈벌이했고 정치인이 된 뒤에는 돈을 어떻게 조달했는가.

 

"98 1월 독일에서 귀국했을 때 무일푼이었다. 그 전에 쓴 책 인세가 나왔지만 그것으로는 모자랐다. 귀국 후 가명으로 잡지 등에 기고하거나 대필을 하면서 살았다. 하루에 100매를 쓴 적도 있다. 원고지 1장당 7,000원 했으니 하루에 70만원을 번 것이다. 그 돈을 나도 쓰고 독일에 있는 내 처에게 보내주었다. 먹고 살려니 되더라. MBC '100분토론' 등을 진행하면서 수입이 늘어 빌린 돈도 갚고 안정이 됐다. <경제학 카페> 같은 책도 잘 팔려 살만 했다. 내 처는 그 때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2002년에는 돈벌이를 하지 않고 지냈다. 책 인세로 생활할 수 있었다. 2003년 초 국회의원이 됐다. 5년간 정치하며 봉급에서 매월 400만원을 집에 주고 나머지는 활동비로 썼다. 5년 동안 후원금을 20억 원 좀 넘게 걷어 그 절반을 열린우리당에 당비로 냈다. 내 처도 시간강사 하면서 돈을 벌어 연금보험 들고 저축도 조금씩 했다."

 

_지금의 참여당 살림은.

 

"돈이 없다. 그래서 빚을 내야 한다. 당원들이 한 달에 1억 원 정도 낸다. 지난해 8월부터 국고보조금으로 연간 8억 원 정도가 나온다. 당비 수입과 국고보조금을 합친 20억 원 정도로 당을 유지한다."

 

_정치인 유시민에 매료돼 큰 돈 내겠다는 사람은 없나.

 

"입당해서 특별당비 형식으로밖에 낼 수 없다. 하지만 요즘은 겁이 나서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_어디 사나. 재산은 얼마나 되나.

 

"아내 명의로 된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의 아파트. 처음 국회의원 하던 동네다. 그리고 자동차 한 대."

 

_재산신고액은.

 

"마지막 공직자 재산신고 할 때 마이너스였다. 채권자 대한민국에 29,700만원 정도의 채무가 있었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중도 사퇴했다고 해서 후원금을 다 내놓으라고 했다. 법에 그렇게 돼 있다. 그런데 그 법이 재작년 위헌결정 나 채무가 탕감됐다. 그래서 지난해 지방선거 때는 신고재산이 3억 얼마인가 됐다."

 

_자제분이 1 1녀인데 큰 아이 대학 갔나.

 

"지금 대학 3학년이다."

 

_사교육은 했나.

 

"중학교 때 일주일에 두 번씩 영어학원 다녔다. 그 뒤로는 모르는 것 있으면 아이 엄마와 내가 가르쳐 주었다."

 

_, 이제 정치 이야기를 해보자. 19일 당 대표로 선출됐다. 국민참여당은 진보주의 정당인가, 자유주의 정당인가.

 

"둘 다다. 진보자유주의 정당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는 넓게 보면 자유주의자인데 자유주의 안에도 가능하면 많은 것을 시장에 맡기자는 보수자유주의가 있고, 사람들 사이의 정의를 적극 수립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는 생각하는 진보자유주의가 있다. 진보자유주의 정당이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다른 나라에는 다 있다. 미국은 민주당이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의 여러 세력을 감싸고 있다."

 

_우리도 미국의 민주당처럼 그런 세력을 다 감쌀 수는 없나. 정치인 유시민 1인을 위해 진보자유주의 정당 개념이 나온 것은 아닌가.

 

"아니다. 진보자유주의에 대한 자료와 문서가 얼마든지 있다. 한국의 제 1야당인 민주당에 대해 말하자면 보수자유주의자가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다. 물론 진보자유주의자가 일부 있긴 한데 보수자유주의자들이 포용하지 않으려 한다."

 

_반대로 진보자유주의자들이 보수자유주의자들을 견인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아닌가.

 

"진보자유주의자가 소수, 보수자유주의자가 다수다. 결정은 다수가 한다. 다수파가 하기에 따라 소수파가 머무르느냐 떠나느냐가 결정된다."

 

_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노무현 정부의 정치철학과 참여정부의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직전만 해도 참여정부의 업적, 노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모두 부정당했다. 정치인 노무현, 전직 대통령 노무현, 인간 노무현마저 깡그리 부정당했고 한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유린당할 때 어느 누구도 작은 동정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자 평가가 바뀌었다. 그가 나름대로는 진심을 갖고 일했고, 의도하지 않은 오류에 죽음으로 책임지려 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민주당도 한때는 그를 부정했지만 그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한다. 진보정당도 부정적이었으나 지금은 성찰적 태도로 참여정부를 평가한다. 이렇듯 여러 정당과 정치인들이, 국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좋은 점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려 하는데 그것들에 대해 독점적인 상속권을 주장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본다. 대신 우리는 아무도 가지려 하지 않는 유산을 물려받으려고 한다. 비정규직 증가, 소득격차 확대 같은 참여정부의 부채다. 참여정부는 노동, 복지, 정치혁신 이 세가지도 이루려고 했지만 용기가 없었거나 역량이 부족해 실패한 부분이 있다. 그것도 우리가 맡으려 한다. 우리가 정치를 하는 것은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_하지만 동일한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채무자가 능력이 부족하면 돈을 더 꿔주고 그것으로 더 벌게 해서 갚도록 하는 것 아닌가. 그 동안 참여정부가 국민에게 빚졌다고 비판해 온 분들과 함께 빚을 갚아보자는 것이다."

 

_그렇지만 친노그룹에는 유 대표를 적자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손학규 대표를 지지했고 안희정 충남지사는 정세균 전 대표와 가깝다. 강금원 회장은 "정치인 유시민은 친노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 분들이 나를 좋아해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으니 섭섭하다. 아니 얻어 맞으니까 아프다. 아프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너무 작은 정당이라, 아프다고 하면 약해 보일까 봐 꿋꿋하게 견디고 있다. '웃어야 캔디, 달려야 하니'라는 아이디를 쓰는 당원이 있다. 만화영화 주인공 캔디, 하니 알지 않나. 우리가 캔디가 되고 하니가 되려면 웃어야 하고 달려야 한다. 외롭고 힘드니까 넘어져도 웃고 아파도 안 아픈 척 한다. 판단이 서로 다르더라도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보고, 그것을 돌아보고 평가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본다."

 

_강금원 회장은 유 대표가 친노와 상의하지 않고 통보만 함으로써 친노의 분열, 야권의 분열을 가져왔다고 했다. 유 대표의 행위가 결과적으로 야권의 분열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참여당을 분열세력으로 본다면 기존의 정치구조 속에서 새롭게 태동하는 모든 정당은, 관련된 모든 정당으로부터 분열주의라는 비판을 받게 돼 있다. 그것이 두려우면 창당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조그만 신생 정당으로, 큰 정당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좋은 소리 듣고 칭찬받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_대선 예비주자 지지율 조사를 보면 10~15%로 야권에서 1위다. 지지표의 응집력은 강한데 확장성이 없다는 분석이 대세다.

 

"민주당이 나와 참여당을 잘 활용하면 된다. 야권의 맏형으로서, 우리를 연대의 대상으로 데리고 가면서 대화하면 된다. 지난해 경기지사 선거도 민주당의 김진표 후보가 나왔으면 이겼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을 누가 확신할 수 있나. 그럼 서울시장 선거는 왜 졌나. 민주당의 한명숙 후보만큼 확장성 있고 이미지 좋은 사람이 어디 있나."

 

_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이 김해을 재보선 출마를 포기한 것을 둘러싸고 유 대표가 인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시각이 있다.

 

"인위적인 영향력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당이 김경수 사무국장에게 '참여당으로 하면 안되겠냐'는 정도로 말한 것은 사실이다. 참여당으로 한다고 했으면 이봉수 전 청와대 농업특보도 참여당 후보로 안 나섰을 것이다. '우리 참여당이 여기서 한번 하고 싶다. 그런데 당신이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다고 해서 우리가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당신의 권리다. 그래도 우리의 생각을 당신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뭐 이 정도 김경수 국장에게 말했다고 보면 된다."

 

_권양숙 여사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나.

 

"현실정치에 왜 권 여사를 끌어들이겠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확인해 보라."

 

_민주당은 김해을에 곽진업 후보를 내세웠다. 민주당과 참여당의 단일화는 어떻게 될 것 같나.

 

"단일화 해야 한다. 그런데 이봉수, 곽진업 두 후보 중 누가 단일 후보로 나서야 이길까. 아마 민주당도 알고 있을 것이다."

 

_국민참여당은 내년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인데 민주당이 지역구를 일정 정도 내줘야 가능한 것 아닌가.

 

"민주당도 우리가 일부를 내줘야 가능하니 피차 마찬가지다. 우리가 나가지 않아야 민주당이 당선될 수 있다. 연대나 연합은 일방적인 시혜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큰 정당은 큰 책임, 작은 정당은 작은 책임을 져야 한다."

 

_그런데 지역구에서는 대중적 인지도 등에서 민주당 인사가 앞서는 것 아닌가. 그러니 연대나 연합이 되면 민주당이 더 양보하는 것 아닌가.

 

"같은 논리로 참여당이 전 지역구에 후보를 내면 어떻게 될까. 연대나 연합은 호혜적이다. '원래 우리 건데 쟤들이 내놓으라고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원래 우리 것이란 없다."

 

_참여당도 조금 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가진 게 있어야지."

 

_당장 이번에 김해을이라도.

 

"아니 99개 갖고 있으면서 1개 가진 쪽에 달라고 하면 어떡하나."

 

_민주당의 한 중진은 이렇게 말했다. "유시민 대표가 10~15% 지지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의 대권 후보는 결국 유 대표와 손을 잡아야 한다."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박 터지게 싸우는데 유 대표는 준결승에 가있다는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경선 틀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그런 건 별 문제가 안된다. 정권교체를 꼭 하고 그러기 위해 진보개혁진영의 후보가 1명이어야 한다는데 합의만 하면 된다. 일단 합의한 뒤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고 검토하다 보면 접점이 찾아진다. 마음만 맞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6개월 전부터 각 당의 대표가 모여 쉽게 합의되는 것부터 공표하고 그렇게 해서 서로를 구속하면서 방법을 찾아나가자고 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대꾸도 하지 않는다."

 

_왜 그럴까.

 

"모르겠다. 나 때문인가. 내가 은퇴하면 잘 될까."

 

_박근혜 대세론을 인정하는가.

 

"인정하지 않는다. 한나라당 지지율이 50%가 나오는 샘플로 여론조사를 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의 지지도가 38~40% 나오는 것은 그 내부의 이야기일 뿐이다."

 

_이회창 총재도 여론조사에서는 20% 정도 밖에 안 나왔다.

 

"여론조사 샘플에 문제가 있다. KT를 통한 샘플은 한나라당에 유리하다."

 

_KT 유선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보수적이라는 뜻인가.

 

"그렇다. 15% 정도 낮게 봐야 한다. 그러면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도가 25% 수준인데 그게 이회창 대표 지지율과 비슷하다."

 

_여러 인터뷰에서 "대선 때 보수세력이 분열되지 않은 적이 없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했는데.

 

"100% 확신한다. 보수가 압도적으로 강한 사회이므로 승리의 자신감 때문에 분열할 것이다. 과거에는 분열하고도 세 번 이기고 나머지 두 번도 아슬아슬하게 패했다. 반면 야권은 단합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

 

_친이 쪽에는 노 전 대통령처럼 스토리가 있는 후보가 나가면 박근혜 전 대표를 이길 수 있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국민이다. 개혁정권(김대중 정권) 5년 만에 끝나는 게 아쉬워 승리를 이끌 인물을 중심으로 결속하고자 하는 의지가 광범위하게 있었고 그 결과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민주정부도 10년이 지나니 조류가 바뀌었다. 그 어떤 배도 뜰 수 없게 됐다. 설령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 민주당 후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갔어도 큰 표 차로 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년에 보수 정권을 5년 만에 바꿀 수 있을까. 그러려면 그만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강부자, 고소영, 권력의 사유화, 독선적 국가운영, 구제역 등으로 해서 바꿔야 한다는 결심이 점증하고 있다고 우리는 본다."

 

_하지만 그런 불만이 박근혜 전 대표로 바꾸자는 식으로 표출될 수 있지 않을까.

 

"큰 틀의 변화를 원한다면 정치세력을 바꿀 것이고,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한나라당 정권을 연장할 것이다. 우리는 사람 교체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알리고, 더 매력적인 인물을 내세워 정치세력의 교체가 가져올 의미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_유 대표가 요즘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가제)라는 책을 쓰고 있다고 들었다. 이 시점에서 국가라는 문제를 책으로 쓰는 이유가 뭔가.

 

"정치를 하면서 정치권력을 둘러싼 경쟁이 왜 살벌하고 적育岵歐低?생각해보았다. 여야 의원이 만나면 골프도 같이 하고 외유도 함께 하는데 정치무대에서는 그렇게 으르렁거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왜 나를 빨갱이라고 하며 손가락질 할까, 그런 것들에 대한 의문을 풀려는 작업이다."

 

_그걸 국가론으로 풀 수 있나.

 

"보수, 진보, 자유주의가 국가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_어떻게 다른가.

 

"그게 궁금해서 지난 2년간 역사학자, 정치학자, 철학자들이 국가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를 들여다 보았다. 국가란 무질서와 불법, 외침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게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한 보수의 국가관이다. 가급적 국가는 사람들의 일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유주의 국가관도 있고, 국가는 지배계급의 도구로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르크스주의적 국가관도 있다. 그런데 이 셋 모두 답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답은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가 수립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라는 개념을 2009년 용산 참사에 적용하면 국가는 재개발 관련 법률과 제도를 제대로 갖추고 중재 노력을 해 그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했어야 했다. 그것을 나는 목적론적 국가론이라고 하고 싶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국가론이기도 하다. 그런데 진보는 국가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독재와는 자유주의 국가론을 갖고 싸웠고 민주화 이후에는 실질적 민주화가 안됐다며 국가에 적대적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국가가 합법적 강제력을 휘두르는 존재이므로 이를 맡는 세력은 제대로 된 국가관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혁진보진영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다른 국가관을 가지고 있어 불신을 사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_그런 점에서 보면 진보의 언어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국가 등 보수들이 사용할만한 언어를 민주당의 용어로 환치해 잘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렇다. 오바마는 연설할 때 중요한 자기 주장을 한 뒤 잠깐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간다. 예를 들어 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The United States) 하고는 잠시 쉬었다가 노래하듯 오브 아메리카(of America)라고 한다."

 

_민주당이지만 보수세력이 봐도 안심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건가.

 

"그렇다. 그는 흑인에다 젊고 정치경험이 없고 사회운동가 출신에 급진 이미지고 민주당의 진보파 아닌가."

 

_유 대표도 앞으로 연설할 때 '우리 대한민국'을 강조하는 게 어떨까.

 

"이미 몇 년 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연설할 때 '우리 대한민국'이라고 하면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국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1985년 항소이유서에도 전두환 대통령 정부를 두고 '소중한 우리 국가의 대리인이 될 수 없다'고 썼다. "

 

_유 대표의 복지론을 압축하면.

 

"사람 중심의 복지국가가 가장 적합할 것 같다. 우리는 해방 이후 안보국가, 발전국가, 민주국가를 차례로 거쳤다. 그런데 87년을 계기로 민주국가가 된 뒤 한쪽에는 특권층이 생기고 다른 한쪽에는 기회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생겨나 사회국가 혹은 복지국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사실 유럽도 그런 단계를 거쳤다. 그러나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충분히 점프하지 못해 복지국가가 되기는커녕 다시 발전국가로 퇴행한 듯한 상황이 됐다. 그렇다고 해도 진보주의자는 앞의 국가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품을 넓혀야 한다. 과거 대한민국의 발전사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느낌을 주면 이론적으로 옳고 그르고를 떠나 대중적인 기반이 허물어진다. 앞의 국가 형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더 높은 수준으로 가는, 철학적으로 지양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의 주제도 과거를 부정하지 말자는 것이다."

 

_민주당의 무상복지 시리즈를 걱정했는데.

 

"사람들은 무상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치 있는 일은 값을 치러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중도에서 좌까지 커버하는 소중한 제 1 야당 민주당은 바둑판의 중앙을 지켜야지 왼쪽의 두 집을 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

 

_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진보적 인사들은 미국이 재협상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갖고 갔다고 하는데.

 

"우리는 원칙적으로는 자유무역에 찬성한다. 그러나 모든 FTA가 선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사실 통상외교든, 안보외교든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기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국가가 외교에서 이기성 외에 다른 가치를 추구할 수는 없다.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허용하지 않은 것을 두고 개인은 비판할 수 있지만 국가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이기성 측면에서 본다면 개정된 한미FTA는 찬성할 수 없다. 무게중심이 미국 쪽으로 갔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라면 반대표를 던지겠다."

 

_장하준 교수는 비슷한 수준의 국가끼리라면 몰라도 경제력의 차이가 나는 국가와 FTA를 하면 경제가 초토화할 것이라고 했는데.

 

"독일의 역사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책에 고스란히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산업이 뒤진 독일이 앞선 영국과 교역하면 망할 것이라고, 민족주의 입장에서 주장했다. 장하준은 코스모폴리탄으로 변한 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장 교수의 말이 진리라면 우리보다 앞선 나라와 자유무역하면 손해 보니까 안되고 우리보다 뒤진 나라와 하면 나쁜 짓이므로 안된다. 하지만 국가 경영하는 사람은 도덕적인 무역정책이 아니라 국가에 이익이 되는 정책을 펴야 한다. 모든 외교의 가치는 이기성이다. 그런 점에서 민노당이 집권한다 해도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허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_은사이신 정운찬 전 총리가 초과이익공유제를 주장하고 있는데.

 

"취지는 좋다. 우리는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쥐어짠다. 기술 혁신해서 생산단가 떨어뜨리면 중소협력업체들도 대가를 받아야 한다. 이노베이션에 따른 특별이익을 받아야 하는 게 슘페터가 말한 혁신의 동력이다."

 

_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 등 기존의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데 그런 개념이 실천되겠는가.

 

"동반성장위원회 하면서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겠나. 동반성장위원회가 제기한 대기업_중소기업 상생은 참여정부도 고민했던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에게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으니 좀 도와달라고 했다가 국가가 역할을 포기한 것처럼 비쳐 큰 비판을 받았다. 이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유명무실하게 하고 중소기업의 하소연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초과이익공유제 주장은 비상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될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경고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_정 전 총리가 정치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좋은 선생님과 좋은 국무총리, 탁월한 정치인 사이에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제자로서 정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터뷰=이영성 부국장ㆍ박광희 편집위원, 정리=김회경기자 hermes@hk.co.kr
입력시간 : 2011/03/25 16:09:23 

원문: 인터넷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103/h201103251609232106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