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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네티즌 이력서 ◆ 아프로만

노하우업 2011. 5. 19. 13:37


 

 안녕하세요 '노하우업' 간판쟁이 아프로만 입니다.

 

노하우업 [한 줄 코멘트]코너에서 '신의사랑' 회원님이 저 아프로만을 예전의 '우리모두' 사이트에서 본 적이 있다는 멘트를 주셨는데, 솔직히 좀 챙피하고 민망해서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입니다.

 

'우리모두'에서는 '아프로만'이라는 닉을 고정닉으로는 사용하지 않았거든요. 우리모두' 에서는 저역시나 멀티 였습니다(아고~ 챙피...). '신의사랑'회원님이 말씀하신 그런 글 진지한(?) 주제의 글을 올릴 때는 아프로만이고, 간단한 글을 올릴 때는 닉 쓰기가 귀찮아서 저 역시나 다른 눈팅분들처럼 '행인', '지나가다', '나그네' 이런 일회성닉을 사용한 적이 더 많았어요. 그런데도 저 '아프로만' 닉을 기억해 주시니 감사하고 황송하긴 하지만요,, 한편으로는 또 의아한게, 혹시 '아흐리만' 하고 혼동하지는 않으셨는지...'우리모두'에서 당시에 유명했던 필자는 '아흐리만' 이었거든요.

 

현재의 닉 '아프로만'을 아예 등록된 고정닉으로 확정한 곳과 시기는 노무현 홈페이지 노하우(Knowhow) 2002 8월 대선정국에서 알바들의 침투와 난동이 심해지자, 그때까지 유지해오던 <자유게시판>이 분화되어서 <회원게시판>이 새로 신설될 그때 <회원닉>으로 확정 한 겁니다.

 

그 이후 정치/시사분야 어떤 사이트에 가서도 '아프로만' 이라는 닉을 고수 했구요. 멀티닉를 사용한 적이 지금까지 한번도 없습니다. 부족한 글을 올려서 욕먹는 거라면 그 욕을 오롯이 감수 하는 것이 당연한 거구요...그러면 되는 데 굳이 멀티를 사용할 이유가 제겐 없더라구요. 제가 사회적으로 유명한 공인도 아니고, 온 라인에서는 <주민등록증>까서 신상이나 실명을 밝히는 것도 아닌 데, 멀티닉이 필요할 이유가 없죠.

 

여하튼, 그래서 '아프로만' 이라는 저의 고정닉이 확정된 곳이 바로 노무현 홈페이지 [노하우 knowhow] 입니다. 새로 개설한 사이트의 명칭을 [노하우업 Knowhow up]이라고 정한 것은 저에겐 그래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요.

 

노무현 홈페이지 노하우가 오픈 한 때가 1995년 입니다. 몇 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노하우]를 처음 알고 방문한 게 아마 1995 11월 말 이었는데, 그때 이미 오픈되어 있었으니까 그 보다 몇 개월 전이겠죠. 저 아프로만 그러므로 [노하우]의 원년 눈팅에 해당됩니다. 저는 정치 의식을 [노하우]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노무현은 저의 첫 번째 정치인 입니다.

 

알게된 이후 [노하우]를 꾸준히 들락거렸습니다. 꼬마민주당 > 통추> 통합민주당' 이였던 노무현이 1997 <새 정치 국민회의>로 귀순할 때, [노하우]게시판에는 울분이 소낙비처럼 쏟아져 내렸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2000년 노무현이 종로의 의원직을 버리고 부산선거에 도전했다가 낙선할 때 역시나 [노하우]에 쏟아져 내린 울분으로 유명한 글 - '노사모' 를 태동시킨 글 제목이 바로 - "울분이 소낙비처럼 쏟아지고 있다 "- 이었습니다.

 

[노하우]에 울분이 쏟아져 내린 두 번의 경우 모두가, 바로 <지역패권>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노하우]의 그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 없이 보고 함께 겪어본 사람 입니다. <노사모>얘기가 어떻게 처음에 [노하우]에서 시작되었고 그리고 결성되었는지 그 태동의 모든 과정 또한 낱낱이 아는 증인이기도 하구요.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대표가 대표 취임 전에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참여당의 성향과 정체성에 대해서 언급한 핵심 대목이 있습니다.

 

기사링크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319500017

 

참여당의 정체성이 민주당과 무엇이 다른가? :

" 참여당은 3당 합당 합류를 거부하고, 새정치국민회의에 들어가기 전까지, 불우했던 시절의 정치인 노무현의 모습으로 계승하고 있다. 그 때 그 분이 추구했던 어떤 정치적 목표들이 이후에 이뤄지지 않았고 여전히 한국 정치를 발전시키기 위한 긴요한 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중심을 두고 있는 거다."

 

[3당 합당 합류를 거부하고, 새정치국민회의에 들어가기 전까지, 불우했던 시절의 정치인 노무현의 모습 ~ 그 때 그 분이 추구했던 어떤 정치적 목표들] =  이 대목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어떤 역사적 고난과 역경과 과정이 있었는지, 그 모든 것을 다 보았고 다 아는 사람이 [노무현의 노하우 원년 멤버] 바로 저 '아프로만' 입니다.

 

그 모든 전 과정을 다 알 뿐만 아니라, 그 의미까지 체감해 온 사람이 바로 접니다.

 

노무현 서거 후 (저에게 노무현의 호칭은 그냥 '노무현' 입니다. 노하우 멤버인 저는 '노짱' 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동안 납작 엎드려 있었던 노빠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데, 죽고 나서 뼈만 남으니까 이제는 노''도 아니고 노~''라고 합디다.

 

저는 노~빠도 노~뼈도 아니고, 굳이 표현하자면, 지향하는 가치관과 생각의 <방향성>을 노무현과 공유하는 자- 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노무현이라면 아마 이럴 거야~ 라며 노무현의 생각을 읽어봅니다. 1995 [노하우]의 게시판 시절부터 노무현 서거 1 달 전인 2009 422일까지 저는 노무현의 생각을 읽고 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노무현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글  - "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아니하다 " - 이 구절은, 노무현 죽음보다 한달 앞선 2009 4 22일 저 아프로만이 '서프라이즈' '무브온21' 게시판에 올린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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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노하우 관련한 저의 이력은 이쯤 하구요, 네티즌으로써의 이력입니다.

 

'아프로만' 이라는 재미 한국계 컴퓨터회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 닉을 보구서 컴퓨터관련업종에 있지 않나 종종 오해를 하는 분 계시는데, 저의 직업이나 전공이 컴퓨터 업계와는 관련 없구요, 단지, 개인적으로 컴퓨터에 관심 많은 마니아이기는 합니다.

 

소위 쌍팔년도에 사회 첫발을 내딛어 입사한 곳이 소위 말하는 대기업이었는데, 그때까지도 원시적인 타자기를 쓰던 대기업들이 한창 사무전산화에 박차를 가하던 때 입니다. 머리가 이미 굳은 중견사원들을 전산교육 시키기보다는, 아무래도 습득이 빠른 신입사원부터 PC를 배정해서 교육을 시켰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그 말로만 듣던 컴퓨터를 신참이 받으니 호강이라구요? 천만에요, 고참들의 서류나 문서작성 업무를 도맡아서 혹사 시키기 위한 쥐약이었습니다.

 

신입사원인 우리들에게 지급된 당시의 PC가 일제 후지쓰 9450기종입니다. XT급이죠. 얼마 뒤에 당시 새로 생긴 국산 컴퓨터회사인 삼보컴퓨터의 AT급 최신 286기종으로 바꾸어주었습니다. 문서작성 워드 프로세서는 <삼보 보석글>이었고 (* 아래한글도 출현하기 전), 스프래드 시트는 '로터스123' (* 지금의 MS 오피스 엑셀) 이었습니다.

 

그러더니만, 몇 달도 안 지나서 이번엔 또 한국의 본사 와 해외지사간의 교신용 무슨 해외 백본망을 개통한다나 하면서, 이 역시 신참들 위주로 교육을 시켰습니다. 네트워크와의 첫 만남입니다. 케텔 (* 하이텔의 전신)도 출현하기 전 입니다. 상용서비스 해외백본망 개통 대한민국 원년세대가 바로 접니다.

 

저희 세대가 이후로 계속 유행처럼 진행되었던 업무/사무전산화의 '시범케이스' 이자 스파르타식으로 교육되고 혹사 당하는 첫빠따 세대 입니다. 이어지는 사내전자결재망 (소위 인트라넷) 구축한다며 '삼성SDS' '포스 데이터' 가서 첫빠따로 교육받고, 뭐 그런 식이죠.

 

이러니, 이런 첫빠따 세대들이 훨씬 나중에 생긴 PC통신망 <천리안>같은 곳의 통신 네트워크 동호회에서 소위 헤커급 '컴도사' 나 시샵( = 운영자: System Operater)으로 많은 분들이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나 자주 가서 놀던 곳 이었던 <헤커스 랩>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 저희들이 써먹던 원시적인 도구로 패킷 핑을 만들어서 맥 어드레스를 공략하는 'D Dos공격' 무기가 요즘의 128비트 보안체계인 윈도시대에 아직도 횡행한다는 게 히안합니다.

 

통신 네트워크 및 O/S 동호회에서 그 다음에 섭렵한 곳이 '그래픽 동호회'입니다. '아티산(Artisan)' 이라고.. 그래픽 마니아들은 아직도 기억할 겁니다. 그래픽을 하게 된 것 역시 회사 업무 때문이었습니다. 해외 바이어들과 설계도를 주고 받다가 설계 프로그램 '오토 캐드' 를 설계기사들 어깨너머로 뚝딱~ 익히다가,, 급기야 '아티산' 이라는 그래픽 동호회를 알게 되고, 거길 통해서 알게 된 '3Ds Max' 로 진출하고,,기어코 '마야(Maya)' 초급반 까지...... 3D입체 모델링 과 랜더링을 익히다 보니, 이미지 편집용 '어도브 포토샵' 은 그냥 저절로 습득되었습니다.

 

저의 예전 글 중에서 <디워 CG복합산업 세계 용들의 전쟁 이야기>는 그렇게 제가 실전으로 익힌 그래픽 세계에 대한 칼럼 입니다. 그 글속에는 제가 모델링하고 랜더링한 저의 작품 이미지도 있습니다.  http://cafe.daum.net/knowhowup/Dnry/12

 

업무용 프로그램인 한글, MS Office,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는 일상으로 사용하는 것 이구요.

 

그래서 저의 글쓰기 실력은 형편 없습니다만, 글에 삽입되는 이미지 에디션이나 또는 간판 잘 그리는 간판쟁이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간판쟁이가 제격 입니다. [노하우업]에 좋은 글들이 많이 모이면 좋겠습니다.

 


 

  아프로만 / 2011-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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