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논점 촛점

[논평] 민주당은 어째서 반노-비노의 소굴이 되었을까?

노하우업 2012. 6. 14. 14:12




원제 : [마케도니아] 변방의 북소리 : 은인-수혜자 관계에서 본 노무현 (마케도니아 / 서프라이즈 / 2004년 10월)

 


※ 펌자 주석.  이 글은 예전 서프 시절 좋은 글을 많이 올려주시던 목사 논객 마케도니아님의 글을 찾아내 올리는 것이다. 마케도니아님의 예전 엠파스 블로그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부득이 출처를 서프라이즈로 명기하는 점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 고미생각의 약간 긴~ 요약 및 논평 

이 글을 읽다보면 대한민국 정치가 어째서 87년의 양김체제 다시 말해 권위주의적 망령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노무현과의 정치인이 어째서 나오기 힘든 것인지, 그리고 어째서 노무현에 이어 유시민이 노무현과 비슷한 비난을 받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간단하게 요약하여 설명하자면 노무현이 민주당에게 버림 받은 이유는 김대중을 모욕했기 때문이며, 동시에 김대중을 추종했던 가신 세력들을 모욕했기 때문이다. 은인-수혜자의 관계라는 것은 결국 가부장적, 상명하복적 관계다. 다시 말해 권위주의적 행동양태라는 말이다. 이것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 87년 체제를 극복하지 못한 대한민국 정치사 최고의 비극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은인-수혜자 관계에 가장 자유로웠던 정치인이 바로 노무현, 유시민이라는 점이 핵심 포인트다. '설렁탕 한 그릇 조차 못얻어 먹었다'는 후단협 김영배의 투덜거림과 '국대 싸가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유시민에 대한 평가는 기실 같은 구조와 맥락에서 나오는 결과물이다.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았고 '이권'을 보장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모욕'을 당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모욕에 대한 댓가는 그들 입장에서는 철저한 '냉대'와 '왕따', 그리고 '응징'으로 귀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해찬 체제가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대다수가 반노, 비노의 소굴이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이 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대선을 준비한다는 것은 기대 난망한 일일 뿐이다. '공정경선'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역차별'이나 안당하면 다행이지 않겠나.. 쯧쯧..;;


덧말.. 


대한민국 정치사의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은인 - 수혜자 관계에서 파생된 가부장적 상명하복 관계 뿐만 아니라 공사구분 못하는 스킨십에 바탕을 둔 이너서클 및 조직 구성 스킬이 판치는 대한민국 정치의 구조적인 '관행' 역시 이를 부채질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얼마전 아프로만님이 노하우업 까페에 올리신 유시민 인터뷰 논평 글로 대체한다. 



▶ 관련 칼럼 : [논평] 유시민- 통진당 문제핵심은 민주주의 [백지연 쇼 12-06-07]
(http://cafe.daum.net/knowhowup/Dnqf/415원문 보기 




 고미생각 / 2012-06-14
■ 노하우업 카페 (http://cafe.daum.net/knowhowup/Dnqf/418)

■ 원문 Blog (http://archivistory.tistory.com/12)

 포스팅 공유: 노하우업 닷컴 -  http://knowhowup.com/186 




저는 노무현 현상에 대단히 주목합니다노무현의 그 어떤 인격과 품격에 국민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다 못해아주 열광했거나 또는 열광하고 있기 때문인데이 실체를 여러 가지로 살펴볼 수 있겠지만저는 문화적 관점(cultural perspective)에서 그를 "중앙"(center) 지배세력에 항거하는 "변방"(margin)의 외침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선 그의 고졸 사법고시 합격의 입지전적 신화는 제외하고라도청문회를 통해 무명의 국회의원에서 단번에 전국적 스타로 떠올라 "중앙"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점부터 시작해서가장 먼저 "중앙"의 기득권 세력의 대변자인 조선일보로부터 여러 가지 낙인을 찍힌 점이 그러합니다또한 박해자가 아닌 피해자에 가까운 비주류적 야당 속에서도 언제나 주류가 아닌 비주류즉 변방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혹자는 이 사회 주류세력인 영남 출신인 그가 어찌 변방 출신일 수 있느냐고 딴지를 걸 수 있겠습니다만삼당야합 이전까지 부산경남은 대구경북과 비교해 여러 가지 지표상 분명히 소외받던 저항적 지역주의의 고장으로 그 반골성은 호남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이는 유신의 종말을 고했던 부마항쟁이 이 지역에서 타올랐음과, 87년 6월 항쟁이 이 곳에서 가장 활발히 전개된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현재 일각에서 제기되는 "지역패권주의"론은 박정희의 20년 영남철권통치가 같은 영남인의 분노에 인해 무너졌다는 점에서 보다 정치(精緻)한 지역 세분화를 논의 전개상 필요로 합니다뭉뚱그려 대충 말하는 주장은 대중들에게 그냥 뭉뚱그려 무시될 뿐입니다.

 

이제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제 논의를 더 해 볼까 합니다. 1세기 그레코-로만 세계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연구자들은 그 당시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명예와 수치"(honor and shame), 그리고 은인-수혜자(patron-client) 관계를 굉장히 중시합니다그 당시 사회가 경제적 계급사회인 것은 너무나 명백하지만그 가운데에서도 가부장적 은인과 수혜자의 관계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한 지역의 가부장적 통치자 또는 그보다 적은 규모의 토호 유지는 그 수하에 직계 및 방계 가족노예날품업자고용인그리고 세입자 등을 데리고 있는데이들에게 이 가부장적 은인은 재정적 또는 기타 유무형의 편의를 제공하고이들은 이 은인에게 적절한 칭송(honor가 될 만한 모든 것)을 돌리면서 그 사회적 관계와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은인-수혜자 관계가 지역으로 확장되면수도에서 집권하고 있는 최고통치 계급 및 그 이데올로기 생산 서기관 집단(retainer class)라는 "중앙"(center)과 그 중앙의 지도와 물적 도움을 얻는 지방즉 "변방"(margin)의 지역적 patron-client 관계가 성립되죠.

 

그런데 수혜자들이 이 관계를 깨면 이는 은인에겐 대단한 수치(shame)가 됩니다그럼 그 관계를 깬 수혜자는 더 이상 그 관계를 지속할 수 없어 은인과 그 이념지탱 세력에게 유무형의 제재를 받아결국 그 사회를 뜨게 됩니다. 아니면 반드시 법적 제재를 받던가 최소한 문서로 크게 사과하고 그 불평등 관계로 다시 들어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변방이 중앙에게 행여 시비를 걸면 중앙은 여러 압력을 통해 그 반란을 진압하게 됩니다. 이는 명백한 중앙의 수치이기 때문입니다왜일까요이 은인-수혜자 관계는 너무나 명백하게도 가부장적 은인이 중심이 되는 불평등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성서학계에서는 이런 문화인류학적 통찰을 가지고 성서를 연구합니다만한국 정치사에 간략히 적용해 보면, 양김은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는 지역적 맹주로서 명백한 가부장적 은인들이었습니다그래서 그 밑에 있는 수혜자들에게 적절한 감투나 지역구그리고 정치자금을 주죠양김에게 정치자금을 대던 재벌도 또 다른 의미의 수혜자들 중 하나이겠고요대신 수혜자들은 그 은인을 위해 은인이 원하는 것은 다 하게 됩니다.

 

죄송하지만몇몇 분들은 민주화운동을 이런 시혜에 대한 보답으로 한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이는 삼당야합 이후수많은 민주계 의원들이 이전과 달리 국가보안법 폐지 등의 문제에서 급격한 사상적 변이를 보였음을 보아 잘 알 수 있습니다. 자신들을 돕는 가부장의 처지가 바뀌었으니가신들도 입장을 바꿔 그 은인에게 명예(honor)를 줘야 하기 때문이지요그러므로 은인이 당을 바꾸면 그 밑의 수혜자들도 죄다 당을 바꿔야 합니다이는 삼당야합이건 국민회의 창당이건 별 다를 게 없습니다.

 

노무현은 김영삼 은인의 최대 수혜자였지만이 삼당야합을 거부함으로써 이 수혜관계에 일차적으로 균열을 냅니다. 그는 95년 김대중의 지역등권론에 반대한 이후, 96년 국민회의 가담을 거부함으로써 명실상부한 한국정치의 은인-수혜자 관계에서 벗어납니다물론 노무현의 이러한 주종관계 거부는 양김에게 두고두고 수치(shame)가 되죠.

 

저는 노무현 정권의 핵심은 바로 그가 이 전근대적 정치적 주종관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정치인이라는 점에 있다고 봅니다그래서 백성이 원하는 정치개혁을 할 만한 위치와 배경을 객관적으로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죠. 노무현의 정치적 빚이 없는 "자유인상태는 신당에 대한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가장 명백한 사실입니다.

 

옛 전두환의 수혜자였던 민정계와 이회창 수혜자였던 소장파들이 정치개혁을 할 여지가 적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고그래서 한나라당이 정치개혁을 주장하면 왠지 웃음부터 나오는 것입니다그들은 정치적 은인(benefactor)에게 반항해 본 역사가 없기에정치적 부채가 많습니다. 그렇게 정치자금 또는 영남/강남의 편한 지역구를 은인에게 그대로 물려받은 사람들이 변방의 광야의 삭풍을 이해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노무현에게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빚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현존 유력 정치인 중 가장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는 자산과 명예가 있다는 말입니다더구나 그런 빚조차도 한화갑이나 박상천정균환 의원에게는 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런 문화적/문화인류학적 통찰을 성서에 적용해 보겠습니다신약성서에 나오는 갈릴리라는 지역은 명백히 소외된(marginalized) 지역으로 중앙 예루살렘 또는 더 큰 중앙인 분봉왕 헤롯아니 그보다 더 큰 로마제국의 시혜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예수운동이 바로 그 변방에서 시작되었죠신약성서 마가복음 3장에 보면 갈릴리 출신인 예수께서 그 변방에서 갖가지 기적을 행하고병자들을 고치는 등 민중들의 아픔을 돌아보시며열렬한 대중의 지지를 얻자 예루살렘의 서기관들즉 "중앙"에서 집권층의 통치를 돕는 가신 계급(retainer class) 엘리트들이 와서 그의 민중적 활동에 시비를 걸기 시작합니다그런데 희한하게도 기적활동을 줄이라거나민중활동을 자제하라거나 이렇게 행동지침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다짜고짜 예수가 "귀신의 힘을 힘입었다"고 하지요예수의 민중친화적 활동은 바로 "사탄"의 활동이라는 저주입니다.

 

언제나 주변화된 변방에서 출현하는 대중적 개혁자는 중앙의 정치 엘리트들특히 통치의 준거이념을 만들어 내는 서기관 계급(오늘날의 메인 스트림의 조중동 같은 부류)의 견제를 받는데문제는 언제나 그 견제가 이념과 정신의 문제를 건드리는 황폐한 형태로 나타나고그 결과는 바로 정신과 이념이 "사탄"의 것이라는 저주스런 낙인(label)이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색깔론인 셈인데지식의 고고학적으로이러한 색깔론은 아주 유래가 깊고 그 발현이 아주 빈번하고 다양한 반대자 제압의 틀첫째그 새로운 개혁적 리더는 반드시 변방에서부터 출현하며둘째민중의 강력한 지지를 얻습니다셋째그 리더가 개혁을 바라는 백성의 시대정신을 담보하게 될 경우반드시 그 중앙의 반대 엘리트들과 그 가신들은 그와 그의 운동을 반드시 이념적정신적으로 낙인찍습니다이러한 낙인은 그 출현한 개혁가의 정신 바로 그 자체에 시비를 걸어그의 모든 것이 미친 짓이라고 보여주는 효과가 있죠중세의 마녀사냥은 이런 낙인의 극대화된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낙인찍음(labeling)의 메커니즘은 그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는데영혼(신념)이 사탄(빨갱이)에게 넘어갔다는 종교적(또는 정치적색깔론에서부터 시작해사람의 출생지를 건드리거나 생김새를 흉을 보는 사소한 낙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작년 노풍이 불자영남 일각에서 노무현의 고향이 전라도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최근 김민웅 목사가 품격과 관상에 시비를 거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겠군요예수 또한 아비가 없다는 설움을 많이 받았을 뿐 아니라, "갈릴리의 목수가 아닌가?"라는 지역적 비아냥을 들었죠.

 

지역에 대한 낙인이 얼마나 광포한 지는 수제자 베드로가 갈릴리 사투리을 의심하는 여종을 향해 정색하며 예수를 부인하던 그 당황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지난 세월 호남을 향한 낙인은 성서에서도 나오는 이런 변방에 대한 집요한 낙인화와 유사한종교적 치유를 필요로 하는 정신적 고통이었습니다.

 

대중적 현상으로서의 노무현 현상은 그렇기에 검증과 예측을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주지하다시피 작년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집권당 최대 기득권 세력 동교동의 사전 낙점을 받은 "중앙"의 이인제가 "변방"의 노무현의 장인의 사상에 시비를 걸고조선일보가 (이전 김대중에게 그리도 해댔듯집요하게 빨갱이의 낙인을 덧씌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상적정신적 낙인은 그 피해자의 정신을 황폐하게 하고 그의 모든 선의가 부정되는 점에서 가장 부도덕한 공격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께서도 다른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받지 못할 거라고 선언하셨죠반대자에 대한 색깔론의 낙인은 용서받지 못할 가장 비열한 죄악입니다이 점에서 현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 색깔론 낙인의 망령에서 고통을 당한 변방 출신 김대중 이후 지금 누가 가장 중앙의 엘리트 세력들에게 비난받고 낙인찍히고 있는지를 분명히 봐야 할 입니다.

 

사실 정치적 색깔로 치자면 민노당이나 사회당이 훨씬 더 왼쪽에 향해 있지만그 어느 중앙의 엘리트나 그 수하 가신들도 그 지도자들을 향해 빨갱이의 낙인을 찍거나그 관상에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한 마디로 이 분들은 여전히 변방에 있지만중앙의 주류세력을 위협할만한 대중성이 없기 때문입니다이게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좀 미안한 추측이지만노무현 공격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더 좌파적인 이런 정파들도 조중동에서 띄워 주거나 전략적으로 이용할 것입니다. "이이제이"이니까요. (저의 민노당에 대한 애정은 분명합니다다만 대중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총선 선전이 기대됩니다다만 예상보다 선전할 경우조중동 기득권 세력의 민노당 마녀사냥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중앙의 기득권 체제에 위협이 되는 즉시이 분들은 사탄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노무현 현상이 성서의 메시아 돌풍 현상과 같다거나노무현이 예수 같은 무흠(無欠)한 개혁적 예언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다만 "변방에서의 돌풍 현상"이라는 예측가능한 사회적 현상들이 갖고 있는 구조적 유사성(structural homologue)을 과학적비판적으로 바라 봐야 하고예측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에 대한 성찰은 한국 기득권 중앙 세력의 재편과 개혁이라는 가장 시급한 과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극단적 "노빠"들의 일종의 노무현 무흠론과 김민웅 식의 극단적 민주당 종파론 사이에서 민의를 적절히 견인하는 가운데이런 성찰을 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노무현만큼 봉건적 한국정치를 깰 사람이 있다면 저는 주저 없이 그를 지지할 것입니다그런데현 정치질서 속에서는 그런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존 정치질서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정치개혁적 리더들이 여기 저기서 출현해야 할 것입니다.

 

김문수나 이재오또는 정균환 등 이전 민주화 운동가들은 결단코 이를 성공시킬 수 없습니다도전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그래서 민중의 과도한 지지를 받아본 적도 없거든요김문수와 이재오가 뜨려면 반드시 한나라당을 탈당하던가가장 과격하게 당내 정풍운동을 해야 합니다그런데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그래서 기존 은인-수혜자 관계에서 자유로운 새 정치세력의 출현은 필연적입니다신당이든 기존 정당이든 이를 가장 철저히 수행하는 집단만이 민중의 긍정을 얻게 될 것입니다노무현 또한 이 민중의 염원을 배신하는 한 그는 실패할 것입니다.

 

다만 그 성공의 가능성은 지난 역경의 내공이 보여주듯 상당 부분 노무현과 그를 따르는 세력에게 조금 더 있다고 봅니다이는 한국정치 system의 역사상 그렇습니다양김은 이미 70년대에 유진산 등의 구상유취론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가부장적 야당에서 이러한 개혁적 반기를 들면서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또한 이후 중앙 주류와의 비타협적 투쟁을 통해 위대한 민주화의 거장들이 되었죠이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선배들과는 또 다른 형식과 내용의 새로운 정치개혁은 그들의 그늘을 벗어난 새로운 세력에게 주어진 것입니다향후 여러 가지 형태의 변방의 북소리는 계속 울려 퍼질 것이고그 중 상당수는 아마도 성공할 것입니다다만 그 성공은 여전히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조중동을 비롯한 이데올로기적 가신 세력의 도전에 얼마만큼 응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또 어떤 색깔의 낙인이 그 미래 앞에 있을 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하겠습니다